아무말 #2. 결혼 후 첫 명절에 대한 '남들의' 걱정
24년 9월. 결혼 후 맞는 첫 명절이다.
결혼 후 첫 명절이라고 하니 다들 걱정을 해줬다. 긴장되겠다~ 뭐 안해가냐~ 어쩌고.
그런데 막상 현실에서의 나는 아무런 일도 문제도 없었다.
남편의 출장을 따라 대전에 먼저 갔다가
일요일에 시댁에 내려갔다.
대전에서 부산으로 가는 길은 그리 막히지는 않았다. 3시간 반 남짓?
서울에서 부산. 차로는 아무리 빨라도 4시간 30분은 걸리는 거리니 이정도면 아주 무난했다.
명절에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다면 7시간 이상이 걸리리라 생각했다.
대학생 때 대학연합회에서 대절한 버스를 타고 고향인 전라도 광주에 갔을 때 10시간이 걸렸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버스로 가도 그정도인데 자차로 가면 얼마나 오래 걸릴까 싶었다.
그런데 웬걸. 생각보다 귀성길은 수월했다.
차가 없는 남편과 나는 간만에 드라이브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걱정거리는 딱 하나. 대전에 들른 김에 잔뜩 산 성심당 빵뿐이었다.
이번에 우리 부부가 대전에서 쓴 돈은 숙소를 제외하면 성심당과 노브랜드가 유일했다.
모든 끼니를 성심당에서 해결했다.
그 결과 성심당에서만 22만원을 썼다.
물론 많은 빵을 샀고, 케이크도 선물용을 포함해 2개나 샀다. 욕망에 진 내 자신이 좀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애니웨이 부산에 도착해서는 선물로 사간 케이크를 삼촌댁에 드리고 시댁에 드릴 한우1++ 선물세트를 사고 집에 갔다.
역시나 어머니께서는 우릴 위한 음식을 이것저것 해두셨다.
부산에서는 손님상에 빠지면 안되는 것 같은 문어와 어머니께서 꼭 만들어두시는 훈제오리쌈무?
이번에는 조기까지 등장했다.
고향집에서는 본 기억이 없는 사이즈였다. 우리집은 항상 작은 조기들을 반으로 나눠 먹었는데.
심지어 내장이 다 제거되고 일부러 말린 듯한 녀석들이었다.
작은 조기들을 십여마리 사서 냉동실에 넣어뒀다가 꺼내 먹는 우리집과는 다른 문화였다.
이번에도 설거지는 내 몫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다음 설에 하라면서 나를 부엌 밖으로 떠미셨다.
나는 또 양보하는 듯 밀려나 과일을 먹었다.
다음날에는 아침 일찍 다대포 해변을 구경하고 돌아왔더니 어머님께서 우리가 서울에 가지고 갈 반찬을 잔뜩 해두셨더라.
그리고 우리가 사간 소고기에 또 어머니께서 차려주신 반찬을 열심히 먹고 한 숨 거하게 잤다.
그리고 일어나서는 또다시 저녁.
남편이 그전부터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해뒀던 터라 '쿨하게' 보내줬다.
내심 서운한 마음이 0.1도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어쩌겠는가. 가끔은 친구들도 만나야지.
나는 뭘 했냐고? 집에서 어머니께서 차려주신 밥을 먹었다.
남편 집은 희한한게 가족들이 다같이 모여서 밥먹는 분위기가 아니다.
항상 조각조각 밥을 먹는데 나는 항상 남편과 둘이 상을 따로 차려주셨다.
그런데 이번에는 처음으로 남편이 없어서 어머니와 단둘이 밥을 먹었다.
어머니께서는 솔직히 '나'의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으셨다. 남편말로는 남편에게도 별 관심이 없으신다고 한다. 어머니께서는 '과거의 남편'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걸까.
그러다가 우리를 소개해 준 선배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어쩌다보니 그 선배의 '이혼설'을 반찬 삼아 어머니와 한시간을 신나게 떠들면서 밥을 먹었다. 죄책감이 좀 느껴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음번에도 어머니와 단 둘이 밥을 먹게 된다면 재미난 스토리를 하나 가져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다음날 아침. 차가 막히기 전 오전 5시에 출발하겠다는 우리를 위해
어머니께서는 2시반부터 일어나셔서 도시락이며 반찬을 바리바리 싸주셨다.
그걸 알면서도 밍기적 대다 4시반쯤 일어났더니 아주버님께서도 우리 도시락과 반찬 싸는 걸 도와주고 계셨다.
그렇게 애정이 가득 담긴 반찬을 가지고
4시간40분 가량을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시간이 그래서 그런건지 막히느 서울톨게이트를 지나지 않아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무난하게 집에 도착했다.
이렇게 첫 명절은
정말 아무일도 없이
주변에서 걱정한 게 무색하게
평온히 마무리됐다.
남편 친구 중 한 명이 와이프는 어떻게 하고 나왔냐고 물었다고 한다.
와이프는 집에 있다는 얘길 들은 그 친구의 여자친구가 본인은 그런거 절대 싫다고 했다고.
ㅎ쉬운 일은 아니지만 또 그렇다고 어려운 것도 아닌데. 우리는 어머니께서 참 좋은 분이라 가능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나도 더 잘하고 싶어진다.
세상은 서로 한 만큼 받는다.




#명절기록 #결혼 #결혼첫명절 #시집 #시댁